방통위 개편 논의 본격화: 3가지 시나리오와 정치적 독립성 확보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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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제 기구'의 추락, 기능 마비에 이른 방통위 현주소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공정한 방송 정책 구현을 목표로 출범한 합의제 행정기구입니다. 대통령이 지명한 2인과 국회 교섭단체가 추천한 3인을 포함, 총 5인의 상임위원으로 구성되며, 위원장과 상임위원 모두 법적으로 3년의 임기가 보장됩니다. 이는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넘어 소신 있는 정책 결정을 내리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대통령 직속 행정기관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여당 추천 위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 속에서, 방통위의 의사 결정은 정권의 의중을 따르는 '여야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야권 추천 위원을 통해 비판적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다른 독임제 부처와의 차별점으로 꼽히기도 했지만, 합의제 정신이 온전히 구현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러한 문제는 극단으로 치달았습니다.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위원들의 임기가 순차적으로 만료되었으나, 후임 위원 임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단 한 번도 5인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특히 야당 몫의 위원 추천은 대통령의 임명 거부와 야당의 추가 추천 중단으로 공석으로 남았고, 한상혁 전 위원장은 임기 만료를 두 달 앞두고 검찰 기소를 이유로 면직 처리되었습니다. 그 후임으로 임명된 이동관, 김홍일 위원장 또한 야당의 탄핵소추안 발의에 직면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결국 지난해 7월부터는 대통령이 지명한 2인의 위원만으로 운영되는 '2인 의결체제'라는 파행이 시작되었고, 이 체제에서 강행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해임 등의 주요 안건들은 법원으로부터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아 잇달아 제동이 걸렸습니다. 현재는 위원장 1인만 남은 상태로,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는 최소 의결정족수조차 채우지 못하며 행정 기능이 완전히 마비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미래를 위한 제언, 방통위 개편 3가지 시나리오 분석
기능 불능 상태에 빠진 방통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 거버넌스 개편안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방송·콘텐츠특별위원회는 미디어 3학회와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제안을 종합하여 3가지 핵심 개편 시나리오를 공개했습니다. 각 방안은 방통위의 역할과 위상을 재정립하여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려는 목표를 공유하지만, 그 접근 방식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러한 시나리오들은 향후 대한민국 미디어 정책의 지형을 결정할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입니다.
구체적인 개편 방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 1안: 미디어콘텐츠부 신설 및 산하 위원회 설치
기존 방통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에 흩어져 있던 미디어 관련 정책 및 진흥 기능을 통합하여 '미디어콘텐츠부'를 신설하는 방안입니다. 방송 정책 전반은 신설 부처가 총괄하되, 정치적 중립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공영방송 분야는 미디어콘텐츠부 내에 별도의 합의제 행정위원회를 설치하여 담당하도록 합니다. 이는 정책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동시에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려는 시도입니다. - 2안: 방통위 폐지 및 기능 이원화
현행 방통위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두 개의 기구로 나누는 과감한 재편안입니다. 미디어 산업 진흥 정책은 신설되는 '미디어콘텐츠부'가 담당하고, 보도 기능을 가진 방송영상미디어 중심의 공공 규제 부문은 독립된 '공영미디어위원회'가 맡도록 하는 구조입니다. 위원 추천 주체를 국회, 대법원장, 대통령 등으로 다변화하여 특정 정치 세력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규제 기구의 독립성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방안입니다. - 3안: 현행 방통위 확대 및 기능 강화
현행 방통위의 합의제 기구 체제를 유지하면서 기능을 강화하고 조직을 확대하는 방안입니다. 과기정통부의 방송진흥 정책 기능을 방통위로 이관하여 미디어 정책의 일원화를 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대신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줄이기 위해 위원 수를 기존 5명에서 9명으로 대폭 늘립니다. 대통령이 3인, 여야가 각각 3인을 추천하는 구성을 통해 정치적 균형을 맞추고,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을 구분하여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안입니다.
정치적 후견주의 단절, 진정한 독립성 확보를 위한 과제
학계와 전문가들은 방통위 개편 논의에서 단순한 위원 수 조정이나 조직 통합을 넘어, 기구의 성격과 기능을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방통위가 '정치적 대립과 갈등의 상징체'가 되어버린 현 상황을 타개하고 본연의 공적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영향력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구조적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방송 장악 논란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방통위의 제도와 운영 방식이 민주적 원칙에 따라 투명하게 작동해야 합니다. 즉, 누가 위원이 되더라도 여야 구도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인사 구조와 투명한 의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입니다.
고삼석 전 방통위 상임위원은 "방통위 제도와 운영이 민주적으로 작동해야 방송의 독립성이 보장된다"고 강조하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장악될 수 있는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는 방통위라는 조직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소모적인 방식을 지양하고, 국민의 요구가 담긴 국정과제로서 방통위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이번 개편의 성패는 공영방송을 특정 정권의 소유물이 아닌 국민 모두의 공적 자산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단순히 기구의 간판을 바꾸는 것을 넘어, '정치적 후견주의'를 완전히 단절하고 제도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마치며
수년간 파행을 거듭하며 합의제 기구라는 이름이 무색해진 방송통신위원회는 이제 중대한 개혁의 기로에 섰습니다. 기능 마비라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3가지 구체적인 개편 시나리오가 제시되며,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점화되었습니다. 각 시나리오는 저마다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추락한 방통위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개편 과정은 단순히 정부 조직을 재편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 미디어 생태계의 건강성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개편안이 채택되고 어떻게 실행되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민의 목소리가 반영된 개혁만이 방통위를 정쟁의 도구에서 벗어나 국민을 위한 봉사 기관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향후 진행될 국회 논의와 정부의 최종 결정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려있음을 인지하고, 이 중요한 변화의 과정을 예의주시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