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대정부 3대 요구안 확정, 장기화된 의정 갈등 해소의 실마리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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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개월간 대한민국 의료계를 뒤흔들었던 의정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발표에 반발하며 병원을 떠났던 전공의들이 마침내 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에 올릴 구체적인 요구안을 확정했기 때문입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9일, 장시간의 논의 끝에 대정부 3대 요구안을 공식 의결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강경 일변도였던 7대 요구안에서 한발 물러나, 보다 현실적이고 협상 가능한 의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소통파'로 분류되는 한성존 비대위원장 체제가 출범하면서 마련된 이번 요구안이 과연 얼어붙은 정부와 의료계의 관계를 녹이고, 사태 해결의 결정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사회 전체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새롭게 압축된 '3대 대정부 요구안'의 핵심 내용
이번에 대전협이 확정한 3대 요구안의 핵심은 '대화와 협의를 통한 문제 해결'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 '윤석열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재검토를 위한 현장 전문가 중심의 협의체 구성'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드러내는 동시에,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실제 의료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단순한 정책 철회가 아닌, 합리적인 재검토를 위한 '협의체' 구성을 제안함으로써 대화의 문을 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둘째,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과 수련 연속성 보장'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의정 갈등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살인적인 근무 시간과 열악한 처우, 교육이라는 본질보다 노동력 제공에 치우친 수련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특히 '수련 연속성 보장'은 장기간의 병원 이탈로 인해 경력이 단절될 위기에 처한 전공의들의 현실적인 불안감을 반영한 것으로, 사태 해결 후 이들의 안정적인 복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달라는 절박한 호소이기도 합니다. 셋째,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를 위한 논의기구 설치'를 제안했습니다. 이는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의료사고 관련 소송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자는 것입니다. 의사의 선의의 의료 행위가 예기치 않은 결과로 이어졌을 때 과도한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현재의 사법 환경이 결국 방어 진료를 부추기고 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고위험 진료과목의 붕괴를 가속화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요구입니다. 이를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를 설치하여 합리적인 제도 개선을 이뤄내자는 제안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3대 요구안은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임시 대의원 총회에서 심도 깊은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되었습니다. 오후 5시에 시작된 총회는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까지 이어지며 전공의 내부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총 177명의 대의원 중 참석한 138명 가운데 찬성 124표, 반대 8표, 기권 6표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습니다. 이는 새로운 요구안이 일부 지도부의 의견이 아닌, 현장을 떠나 있는 대다수 전공의의 총의를 모은 결과물이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전공의들은 이번 요구안을 통해 정부와의 소통 가능성을 타진하고, 의료계의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논의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의료 시스템 정상화를 위한 공은 정부에게로 넘어갔으며, 정부가 이들의 제안에 어떻게 화답하느냐에 따라 향후 사태의 향방이 결정될 것입니다. 전공의들이 제시한 대화의 손길을 정부가 맞잡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최선의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할 중차대한 시점입니다.
기존 7대 요구안과의 차이점과 그 배경
이번 3대 요구안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2월, 박단 전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발표했던 7대 요구안과 비교했을 때 그 성격과 기조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기존 7대 요구안은 매우 강경하고 선언적인 성격이 짙었습니다. 여기에는 ▲필수의료 패키지와 의대 2000명 증원 전면 백지화 ▲의사수급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사고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부당한 명령 전면 철회 및 사과 ▲업무개시명령 폐지 등 정부가 사실상 수용하기 어려운 전제 조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전면 백지화'나 '사과'와 같은 요구는 정부와의 협상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최후통첩에 가까웠고, 이는 결국 양측의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들며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반면, 새로운 3대 요구안은 '전면 백지화' 대신 '재검토를 위한 협의체 구성'을, '사과'나 '명령 철회' 대신 '수련 환경 개선'과 '법적 부담 완화 논의' 등 절차적이고 실질적인 의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는 투쟁의 방식이 선언적 대립에서 실용적 협상으로 변화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소통파'로 알려진 한성존 신임 비대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지도부 개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장기화되는 투쟁 속에서 출구 전략의 필요성이 내부적으로 제기되었고, 강경 일변도의 요구만으로는 사태 해결이 요원하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정부와 최소한의 대화라도 시작하기 위해서는 협상의 문턱을 낮추고, 양측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공통의 의제를 발굴해야 한다는 전략적 선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기존 7대 요구안의 핵심 정신은 계승하되, 표현 방식과 접근법을 유연하게 조정함으로써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고심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통파 지도부 출범과 향후 의정 관계 전망
한성존 비대위원장 체제의 출범은 의정 관계에 있어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전 지도부와 달리 국회 및 정부와의 소통 채널을 열고 대화를 시도하는 등 유연한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이번 3대 요구안 확정은 이러한 '소통' 기조가 공식화된 첫 번째 결과물입니다. 강경한 구호 대신 협상 가능한 의제를 제시함으로써, 전공의 사회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 의지가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정부에게도 대화 재개를 위한 명분을 제공하는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정부 역시 전공의들의 복귀와 의료 현장의 정상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한층 부드러워진 전공의들의 제안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전망이 낙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요구안의 표현은 유연해졌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여전히 정부 정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민감한 사안들이기 때문입니다. '현장 전문가 중심의 협의체'가 구성될 경우, 정부가 추진해 온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의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수련 환경 개선과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는 상당한 재정적, 법률적,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장기 과제입니다. 정부가 전공의들의 제안을 어느 수준까지 수용할 수 있을지, 그리고 협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이견을 어떻게 조율해 나갈지가 관건입니다. 또한, 수개월간의 투쟁으로 지쳐있는 전공의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고, 정부와의 협상 결과를 설득해 내는 것 역시 새로운 지도부가 짊어져야 할 무거운 과제입니다. 결국 이번 3대 요구안은 기나긴 갈등의 종착점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되는 험난한 협상의 출발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마치며
수개월간 평행선을 달리던 의정 갈등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강경했던 7대 요구안을 뒤로하고, 대화와 협의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3대 요구안을 제시하며 정부에 대화의 손을 내밀었습니다. 필수의료 정책의 공동 재검토, 전공의 수련 환경의 실질적 개선, 그리고 의료사고에 대한 사회적 논의 시작이라는 세 가지 제안은 사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로드맵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후퇴나 타협이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한 진일보한 전략적 선택으로 평가됩니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왔습니다. 정부가 이 제안을 진정성 있는 대화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화답한다면, 길고 어두웠던 갈등의 터널을 빠져나와 의료 시스템을 정상화할 소중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정부와 의료계가 어떤 지혜를 발휘하여 이 중차대한 과제를 풀어나갈지, 국민 모두가 깊은 관심으로 지켜봐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