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엑스레이 사용 논란: 의료법 개정안을 둘러싼 의·한 갈등 심층 분석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대한민국 의료계가 또 한 번 큰 논쟁의 중심에 섰습니다. 한의사의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즉 엑스레이 사용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면서 의사 단체와 한의사 단체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직역 간의 갈등을 넘어, 대한민국 의료 면허 체계의 근간과 국민의 건강권, 그리고 환자의 의료 선택권이라는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의사와 한의사 간의 해묵은 갈등이 엑스레이라는 현대 의료기기를 매개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이번 논란의 도화선이 된 의료법 개정안의 구체적인 내용부터 양측의 첨예한 주장, 그리고 법원의 판례까지 다각도로 조명하여 독자들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논란의 핵심: 의료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
이번 의·한 갈등의 시발점이 된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입니다. 이 개정안의 핵심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책임자' 자격 규정을 변경하는 데 있습니다.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의료기관 개설자가 엑스레이와 같은 방사선 장치를 설치할 경우 반드시 안전관리책임자를 선임해야 하며, 그 자격은 의사, 치과의사, 방사선사 등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즉, 한의사가 한의원을 개설하더라도 현행법상으로는 엑스레이 장비를 직접 관리하고 사용할 법적 자격이 없는 셈입니다.
하지만 개정안은 이러한 규제를 완화하여, 의료기관의 '개설자 또는 관리자'가 직접 안전관리책임자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곧 한의사가 개설한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서는 해당 한의사가 직접 안전관리책임자가 되어 엑스레이를 합법적으로 설치하고 진단에 활용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합니다. 법안 발의 측은 이를 통해 한의학 진료의 과학적 객관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의료기관 간 이동으로 인한 환자의 불편과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한의학의 현대화와 국민의 의료 접근성 향상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것으로, 한의계의 숙원 사업 중 하나로 꼽혀왔던 사안이기에 그 파급력이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의료계의 강력 반발: 국민 안전 위협 주장
의료계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라며 전례 없이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이 명백한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의료법 제27조 제1항에 명시된 바와 같이, 의료인이라 할지라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의협은 엑스레이 촬영 및 판독은 현대 의학의 고유한 영역이며, 이를 위해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영상의학 등 수년간의 체계적이고 심도 있는 교육과 임상 수련을 거친다고 역설합니다. 이러한 전문적 과정 없이 한의사가 엑스레이를 사용하는 것은 자칫 질병의 오진이나 지연된 진단으로 이어져 환자에게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대한영상의학회 역시 전문성을 문제 삼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영상의학회는 엑스레이가 단순히 사진을 찍는 장비가 아니라, 방사선을 이용해 인체 내부를 정밀하게 진단하는 고도의 전문 의료기기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미세한 골절, 초기 단계의 종양, 내부 장기의 이상 소견 등을 정확히 판독하기 위해서는 오랜 임상 경험과 깊이 있는 의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충분한 영상의학 교육과 수련을 받지 않은 한의사에게 엑스레이 사용을 허용하는 것은 국민 건강에 대한 심각한 위해 행위이며, 이는 결국 대한민국의 이원적 의료 면허 체계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한의계의 맞대응: 진료권 확대와 환자 편의성 강조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맞서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국민의 진료 선택권 보장과 편의성 증진을 위해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은 시대적 요구이자 필수불가결한 사안이라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한의협은 이미 법원이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에 대한 합법성을 인정한 판례가 존재한다는 점을 주요 근거로 제시합니다. 실제로 지난 1월, 수원지방법원은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를 환자 진료에 사용한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 이 판결은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한의계는 이를 한의사의 현대 진단기기 사용이 불법이 아님을 사법부가 인정한 중요한 사례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한의협은 이미 전국의 모든 한의과대학과 한의학전문대학원에서 엑스레이의 원리, 촬영 기법, 영상 판독 등에 대해 체계적이고 충분한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현대 한의학은 전통적 진단 방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진단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진단의 정확성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충분한 교육을 이수한 한의사에게 엑스레이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규제이며, 환자들이 한의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엑스레이 촬영이 필요할 경우 다른 병원으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의료법 개정안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치며
한의사의 엑스레이 사용을 둘러싼 의료법 개정안 논쟁은 대한민국 의료계의 오랜 현안인 직역 간 갈등을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의료계는 전문성과 환자 안전의 원칙을 내세우며 결사반대하고 있으며, 한의계는 진료권 확대와 환자 편의성, 그리고 한의학의 과학화를 명분으로 법안 통과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습니다. 양측의 주장은 각자의 논리와 명분을 가지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쉽사리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은 입법부의 신중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과정에 달려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번 논쟁이 단순히 직역 간의 이기주의적 다툼으로 끝나지 않고,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발전과 국민의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건설적인 논의의 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앞으로 국회에서 진행될 관련 법안 심의 과정과 각계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주시하며 현명한 결론이 도출되기를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