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KT '쪼개기 후원' 사건 파기환송…황창규·구현모 전 대표 감시의무 위반 책임 물어
최근 대법원이 KT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온 '정치인 쪼개기 후원' 사건과 관련하여 중대한 판결을 내놓았습니다. 소액주주들이 황창규, 구현모 전 KT 대표 등 전직 임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하급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경영진의 직접적인 불법 행위 가담 여부를 넘어, 기업 내부의 위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감시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한 책임을 엄중하게 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향후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와 이사회의 책임 범위에 대한 중요한 법적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재계와 법조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윤리적 책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소액주주들은 지난 2019년, 회사가 입은 막대한 손해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묻기 위해 직접 소송에 나섰습니다. 주주들이 문제 삼은 행위는 크게 네 가지로, ▲대외협력(CR)부문 임직원들의 비자금 조성 및 불법 정치자금 기부, ▲미르재단 출연, ▲무궁화위성 3호 해외 매각, ▲KT 아현국사 화재 등이었습니다. 이 중 대법원이 유일하게 전직 대표들의 책임 가능성을 인정한 부분이 바로 '쪼개기 후원'으로 불리는 불법 정치자금 기부 행위입니다. 이는 기업의 자금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유출되어 정치권 로비에 사용된 사안의 심각성을 법원이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단순한 금전적 손해배상을 넘어, 기업 경영진이 지녀야 할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가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입니다.

사건의 발단: KT '정치인 쪼개기 후원'의 전말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는 '쪼개기 후원'은 KT의 대외협력(CR)부문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불법 행위입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KT CR부문 임직원들은 2014년 5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약 3년 5개월에 걸쳐 소위 '상품권 깡'이라 불리는 수법을 통해 총 11억 5,100만 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부외 자금, 즉 비자금을 조성하였습니다. 부외 자금이란 회사의 공식 장부에 기록되지 않고 거래되는 불투명한 자금을 의미하며, 이는 그 자체로 기업 회계의 투명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이들은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을 임직원 및 그들의 지인 등 다수의 명의로 분산하여, 1인당 100만 원에서 300만 원씩 쪼개어 총 99명에 달하는 국회의원들에게 후원금 명목으로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현행 정치자금법이 법인의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하고 개인의 후원 한도를 규정한 것을 회피하기 위한 명백한 위법 행위였습니다.
이러한 불법 행위가 자행되던 시기, KT의 최고경영자는 황창규 전 대표였습니다. 그는 2014년 1월 취임하여 사건이 진행되는 내내 대표이사직을 수행했습니다. 한편, 구현모 전 대표는 2014년 2월부터 황 전 대표의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며 그를 보좌하다가 2016년 3월 이사로 정식 선임되었습니다. 즉, 두 전직 대표 모두 비자금 조성이 이루어지던 기간 동안 회사의 핵심적인 위치에서 경영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소액주주들은 이러한 고위 경영진이 대규모 비자금 조성과 불법적인 정치자금 기부라는 중대한 위법 행위를 인지하지 못했거나, 혹은 알고도 묵인함으로써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며 법적 책임을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실무진의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기업의 최상위 리더십과 내부통제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 문제를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심과 2심의 엇갈린 판결, 그리고 대법원의 파기환송
소액주주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하급심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2021년 6월에 열린 1심 재판부는 황창규, 구현모 전 대표의 손해배상 책임을 일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언론 보도와 검찰의 사건처리 결과 통지만으로는 피고들이 법령을 위반했거나 임무를 해태했다고 특정할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는 불법 행위에 대한 경영진의 구체적인 지시나 관여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 관련 형사 재판이 진행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9월, 대법원은 KT 법인에 대해 '쪼개기 후원' 혐의로 벌금 1,000만 원을 확정했고, 별도로 기소되었던 구현모 전 대표 역시 2024년 6월 항소심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고 상고를 포기하여 형이 확정되었습니다.
이러한 형사 재판 결과가 나온 뒤인 2024년 10월, 항소심(2심) 재판부는 1심과 다소 다른 판단을 내놓았습니다. 2심 재판부는 구현모 전 대표의 유죄가 확정된 점을 들어 KT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일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KT가 이미 해당 비자금 관련 손해액을 모두 변제받았다고 판단하여, 결과적으로는 소액주주들의 청구를 기각하며 1심의 패소 판결을 유지했습니다. 또한, 황창규 전 대표에 대해서는 검찰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은 점 등을 근거로 "고의 또는 과실로 임직원들의 위법한 업무집행을 조장하거나 방치해 감시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1심과 동일하게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하급심은 경영진의 직접적인 개입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 책임을 제한적으로 해석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사건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습니다.
대법원의 핵심 판단 근거: 이사의 '감시의무'와 내부통제시스템
하급심과 대법원의 판단이 극명하게 엇갈린 지점은 바로 이사의 '감시의무'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대법원은 황창규, 구현모 전 대표가 불법 행위를 직접 지시하거나 공모했다는 증거가 없더라도, 이사로서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의무를 게을리했다면 그 자체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점들을 명확히 지적했습니다.
- 첫째, 부외자금 조성에 관여한 CR 부문 임원들은 대표이사를 비롯한 다른 임직원들로부터 어떠한 제지나 견제도 받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위법 행위를 지속했습니다.
- 둘째, 황 전 대표와 구 전 대표 등 이사들은 상품권 현금화를 통한 부외자금 조성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내부통제시스템을 제대로 확인하거나 점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 셋째, 합리적인 정보 및 보고 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노력하지 않거나, 시스템이 있더라도 의도적으로 감시·감독 의무를 외면한 결과 위법 행위를 알지 못했다면 이는 임무 해태에 해당하여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 대법원은 황 전 대표가 대표이사로 재직하기 시작한 2014년 5월 14일부터, 구현모 전 대표가 이사로 선임된 2016년 3월 25일부터 각각 부외자금 조성이 종료된 2017년 10월 31일까지 이사로서의 감시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기업 경영진이 '몰랐다'는 변명만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으며, 위법 행위를 사전에 예방하고 적발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할 적극적인 의무가 있음을 천명한 것입니다. 즉, 직접적인 가담 여부와는 별개로, 시스템 부재와 감독 소홀이라는 '부작위'에 대해서도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은 것으로, 향후 유사 소송에서 중요한 판례로 작용할 것입니다.
마치며
대법원의 이번 파기환송 판결은 KT '쪼개기 후원' 사건을 단순한 실무진의 일탈이 아닌, 최고경영진의 감시의무 해태와 내부통제시스템의 총체적 실패 문제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기업의 이사회가 단순히 업무를 집행하는 것을 넘어, 회사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윤리적 리스크를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음을 법적으로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이제 공은 다시 수원고등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파기환송심에서는 대법원이 제시한 법리에 따라 황창규, 구현모 전 대표의 감시의무 위반 여부와 그에 따른 구체적인 손해배상 책임 범위가 다시 심리될 예정입니다.
이번 사건의 최종 결론은 국내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경영진의 책임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기업 경영진과 투자자들은 이번 판결이 시사하는 바를 깊이 되새기며, 보다 선진화된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책임 경영 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진행될 재판 과정과 그 결과를 지속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