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복귀, 1년 6개월 의정갈등의 씁쓸한 봉합… 남은 것은 깊은 후유증과 과제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에 반발하며 시작된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1년 6개월 만에 복귀 결정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내달 1일부터 전국의 수련병원들은 돌아온 전공의들과 함께 정상화를 향한 첫걸음을 내디딜 예정입니다. 장기간 지속된 의료공백으로 최악의 상황에 놓였던 의료 현장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되었지만, 이번 사태가 남긴 상처는 단순한 인력 복귀만으로 치유되기 어려운 심각한 수준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유일한 성과로 꼽히는 '의대 증원 백지화'를 위해 치른 사회적 비용이 너무나도 막대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특히 환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희생, 의료 시스템 전반에 걸친 신뢰 붕괴, 그리고 의료계 내부에 깊게 패인 갈등의 골은 향후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길고 긴 투쟁의 끝, 전공의 복귀와 남겨진 상처
정부는 사직 전공의들의 복귀를 독려하기 위해 초과 정원 인정, 군 미필자의 수련 후 입대 허용 등 이례적인 유인책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수도권 주요 병원에서는 약 70~80%의 높은 복귀율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며, 극심한 인력난을 겪던 필수의료 분야의 숨통이 다소 트일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러나 이 복귀 과정은 '의사불패'라는 비판을 재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 현장을 장기간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어떠한 행정적, 법적 불이익 없이 복귀하게 된 선례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이는 향후 비슷한 갈등 발생 시, 정부 정책에 대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더욱 용이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기적인 갈등 봉합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정부와 의료계 간의 건강한 협력 관계 구축에 심각한 장애물을 만든 셈이 되었습니다.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주체는 단연 환자들이었습니다. 응급실을 전전하다 구급차 안에서 생을 마감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례는 우리 사회의 의료 안전망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해 병세가 악화되거나 수술이 무기한 연기되는 등 환자들이 겪은 고통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입니다. 또한, 1년 6개월간의 수련 중단은 전문의 배출 시스템에 심각한 공백을 초래했습니다. 이로 인해 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 분야의 인력난은 더욱 심화되었고,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쏠림 현상 역시 가속화되었습니다. 결국 이번 투쟁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왔으며, 붕괴된 의료 시스템을 정상 궤도로 되돌리는 데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은 싸움: 사회적 비용과 신뢰 붕괴
이번 의정갈등은 의료계와 환자, 그리고 사회 전체의 신뢰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이후, 의사 집단을 향한 국민적 여론은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전 정부가 주도한 '의사 악마화' 프레임이 젊은 의사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고 항변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환자의 곁을 떠난 의사들의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의 실망감과 불신은 깊어졌습니다. 황규석 서울특별시의사회 회장은 "환자와 의사와의 신뢰가 깨졌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토로했으며, 한 대학병원 교수 역시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잃은 것이 너무 많다"고 말했습니다. 의술이 단순한 기술이 아닌,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상호작용임을 고려할 때, 이번 신뢰 붕괴는 대한민국 의료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뢰의 붕괴는 비단 의사와 환자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의료계의 관계 역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의료계와의 충분한 소통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정부의 태도는 의사들의 강한 반발을 샀고, 이는 깊은 불신과 갈등의 골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불신은 향후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등 또 다른 의료 개혁 추진 과정에서도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뢰 없이는 어떠한 정책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사태는 정책 추진에 있어 절차적 정당성과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값비싼 교훈을 남겼습니다. 무너진 신뢰의 탑을 다시 쌓아 올리는 것은 갈등을 봉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지난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내부 갈등의 골: 회복 불가능한 의료계 내부의 균열
외부와의 갈등만큼이나 심각한 것은 의료계 내부에 발생한 깊은 균열입니다. 집단 사직에 동참하지 않고 병원에 남은 동료 전공의들의 신상을 공개하고 비난하는 이른바 '블랙리스트'의 등장은 의료계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동료애와 직업적 연대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불신과 반목만이 남았습니다. 이러한 수평적 갈등은 전공의들이 복귀한 이후에도 병원 내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작용하며 원활한 협업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함께 환자를 돌봐야 할 동료를 적으로 규정했던 상처는 쉽게 아물기 어려우며, 이는 결국 의료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수직적 관계인 스승과 제자 사이의 신뢰 역시 무너져 내렸습니다. 일부 전공의들이 의대 교수들을 향해 '중간착취자'라고 비난하면서 사제 간의 존중과 신뢰 관계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훼손되었습니다. 수련 과정은 단순히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는 것을 넘어, 의료 윤리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도제식 교육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러나 스승을 향한 공개적인 비난과 불신 표출은 이러한 교육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입니다. 한 수련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복귀를 반기면서도 향후 업무 분담과 수련 환경 개선 요구 등을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깨진 신뢰는 향후 수련 교육의 질과 병원 내 위계질서 유지에 장기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며
1년 6개월에 걸친 의정갈등은 전공의 복귀라는 형태로 일단 봉합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환자의 안전, 의료 시스템의 안정성, 사회적 신뢰, 그리고 의료 공동체 내부의 연대감까지 모든 것이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전공의들의 복귀는 끝이 아닌, 기나긴 후유증을 극복하고 무너진 시스템을 재건해야 하는 새로운 과제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었던 필수의료 붕괴, 지역 의료 불균형, 열악한 수련 환경 등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습니다.
이제는 갈등과 반목을 넘어 정부, 의료계, 그리고 국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지속 가능한 의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진지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나 극단적인 집단행동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합리적인 논의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 모두가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됩니다.